석양에 돌아오다 - 어느 ‘좌파’ 감독의 고독하지만 끈질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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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를수록 더욱더 조명 받는 감독들이 있다...

어렸을 적 ‘주말의 명화’나 ‘명화극장’을 단골로 장식했던 영화들 중에 단연 인상적으로 각인된 영화들은 서부극이었다. 누구나 총잡이 흉내를 내며 자랐다. 그런데 그때는 잘 몰랐었지만 어릴 적 눈으로도 다른 서부극과는 좀 특이한 느낌의 영화들 있었으니 나중에야 알게 된 이른바 ‘마카로니 웨스턴’, ‘스파게티 웨스턴’이라 불리던 영화들이다.

주로 이탈리아 감독들이 그 유명한 ‘장고 시리즈’처럼 저예산의 B급 영화로, 단순히 흥행으로 소비할 목적으로 만든 영화들이다. 서부극임에도 미국에서 촬영된 게 아니라, 유럽, 특히 미국 서부와 비슷한 풍광의 스페인에서 촬영됐고, 흥행도 미국이 아니라 오히려 유럽이나 일본에서 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마카로니 웨스턴’, ‘스파게티 웨스턴’의 영화를 만든 감독 중에서도 아주 독특했던 이가 있었으니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다. 서부영화의 대명사처럼 된 <황야의 무법자> 등등으로 우리에겐 어쩌면 가장 친숙한 감독일 수 있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거장 ‘비토리오 데시카’ 밑에서 연출 수련도 받고, <자전거도둑>에도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던 그는 데뷔작으로 로마 제국을 배경으로 한 서사극을 연출한 뒤 미국으로 건너왔다.

레오네 감독의 일련의 서부영화들이 공중파를 탈 때 만해도 구성이 꽤 탄탄한 서부 개척시대의 총잡이 영화로 생각했지, 훗날 자본주의를 질타하는 ‘좌파’의 시선으로 느껴질 것이라 걸 누가 알기나 했을까. 그가 미국으로 온 이유는 자본주의 심장부에서 가장 대중적이고 저렴한 서부총잡이 영화를 빌어 고상함을 떨지않고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비판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는 죽는 날까지 데뷔작 외에 전설적인 <황야의 무법자>를 비롯하여 딱 여섯 편의 영화만 찍었다. 그 6편의 영화들을 ‘달러 3부작’과 ‘옛날 옛적 3부작’이라고 한다. 모두 가히 영화음악계의 신이라 불릴만한 ‘엔니오 모리코네’가 음악을 담당하여 선율로 대중에게 각인됐다. 사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영화들은 곧 엔리오 모리코네의 음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달러 3부작에는 갓 파릇파릇한 무명신인에 불과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데뷔하여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옛날 옛적 3부작에는 명망의 ‘헨리 폰다’, ‘찰스 브론슨’, ‘제임스 코번’, ‘로버트 드니로’가 각각 출연하면서 영화의 성가를 높였다.

그러나 워낙 국내 개봉, 재개봉, TV상영, DVD발매 때의 이름들이 제각각이었던 데다, 거기에 이탈리아어 개봉명이나 영어 개봉명들까지 혼재된 터라 어지럽다. 우선 최근 통용되는 제목으로 정돈이 필요하다. 레오네 감독 영화들의 제목의 변천은 그의 영화들이 얼마나 저렴, 저가의 딱지들을 달고 푸대접받았는지 알 만한 대목이다.

  • 1964 *<황야의 무법자>
    ‘Per Un Pugno Di Dollari’, ‘A Fistful Of Dollars’

  • 1965 *<석양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속) 황야의 무법자>, <달러 좀 더 위해서>
    Per qualche dollaro in piu> For A Few Dollars More

  • 1966 *<석양에 돌아오다>
    <석양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2>, <좋은 놈, 나쁜 놈, 추한 놈>
    Il buono, il brutto, il cattivo,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 1968 *<옛날 옛적 서부에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C'Era Una Volta Il West,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 1971 <석양의 갱들>
    <엎드려 이 멍청아>, <다이너마이트 한 뭉치>, <옛날 옛적 혁명이 일어났던 때>
    Giu la testa, <
    A Fistful Of Dynamite*, C'Era una Volta la Rivoluzione, Once Upon a Time the Revolution

  • 1984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옛날 옛적 미국에서>
    C'Era una Volta in America, Once Upon a Time in America

가령 <석양에 돌아오다>는 이미 다른 영화에서 제목으로 붙여진 <석양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2> 등으로 불렸다. <황야의 무법자>라고 이름 붙여진 영화음악을 듣고, <황야의 무법자> 영화를 봤건만 왜 영화음악이 다른 것인지 궁금했었는데 결국 그건 <석양에 돌아오다>의 주제곡이었다는 황당함이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달러 3부작’, ‘옛날 옛적 3부작’는 마카로니 웨스턴이라는 장르를 빌어 세계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의 이념적 상징인 서부개척시대의 역사가 ‘돈’의 욕망에 의해 굴절과 파행의 역사였으며 레오네 감독은 그 전복에 집요하게 천착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여전히 논란이다. 처음 개봉했을 당시에는 고작 두 시간에 불과했던 난도질당한 극장판이 세월에 흘러 251분으로 늘어난 것처럼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꾸준히 재평가가 이루어지 있다. 레오네 감독은 또 하나의 ‘옛날 옛적’ 시리즈로 ‘러시아혁명’을 배경으로 한 <옛날 옛적 러시아>의 시나리오 작업 도중에 1989년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기존의 서부극들은 ‘절대선’인 정의로운 백인보안관이 ‘절대악’인 악랄하고 살벌한 인디언이나 멕시칸들과 대결하여 유유히 평화를 지킨다는 미국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투사했다. 레오네 감독은 선악의 구도 없이 혼돈과 파괴만 가득한 세상에서 오직 생존과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였던 무법의 시대라는 점으로 서부시대를 새로 조명하였고, 자본주의를 은유했다.

서부는 곧 미국의 정신이었고 따라서 서부를 다루고 논다는 건 미국의 실체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미국 역사의 충실한 호메로스인 <역마차(1939)>로 대변되는 ‘존 포드’ 감독의 반대편에 선 좌파적 입지와 비판적 시선을 견지하며 미국의 역사를 새로 작성했다. 물론 나중에는 존 포드도 인디언과 멕시칸에게도 인간성을 부여하는 수정주의적 시선으로 변모했다.

‘모뉴먼트 밸리’와는 판이하게 다른 주 촬영지 스페인의 장대한 자연풍광은 프런티어 개척사의 실제 역사를 무역사적인 시간대로 뒤바꾸며 영화를 하나의 우화로 간주하기를 요구하는 오페라틱한 무대다.

레오네가 바라보는 개척시대의 서부는 OK목장에서 ‘와이어트 어프’같은 말쑥한 정의의 보안관이 악을 침묵시키는 도덕적 드라마의 장이 아니다. 목장에서 벌이는 결투로 악당 몇 명 쏴 죽이는 것 가지고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존 포드라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레오네는 아니었다.

자본의 폭력의 연쇄를 가능케 만드는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배경을 직시한다. 빌어먹을 현상금 사냥꾼과 무법자와 사기꾼이 판을 치며 더러운 돈의 욕망의 전장인 비열한 거리가 서부의 실체였다. 미국 서부개척 신화의 자화자찬의 전설을 걷어낸 탐욕스런 미국의 진짜 얼굴이라고 레오네 감독은 서사한다.

장장 3시간에 드라마인 <석양에 돌아오다>는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이 그 플롯을 따온 영화다. 그렇다고 원작으로 삼았다고 하기에도 그렇고, 리메이크라 하기에도 그렇고, 그냥 ‘베꼈다’라는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좋게 말하면 김지운 감독이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을 향한 ‘오마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좋은 놈’ ‘정우성’은 <석양에 돌아오다>를 생각하지 않고, 감독의 지시대로 연기했을 뿐이라고 했고, ‘나쁜 놈’ ‘이병헌’의 캐릭터와 연기력은 <석양에 돌아오다>에서 ‘리 반 클리프’이 창출해낸 냉혈한의 모습에는 미치지 못한다. ‘추한 놈’은 ‘송강호’의 이미지 상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서인지 ‘이상한 놈’으로 대체됐고, 코믹을 담당했다. 레오네에 대한 헌사치고는 김지운의 ‘놈놈놈’은 아쉬웠다.

영화는 책속의 부록처럼 ‘남북전쟁’의 시퀸스가 끼어들어간다. 주인공들의 운명은 시대적 배경에 휘말려 좌지우지된다. 사건은 횡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종적으로 벌어진다. ‘좋은 놈’, ‘나쁜 놈’, ‘추한 놈’은 군대에 의해 사로잡히고 징집되어 전쟁에 휘말려든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을 죽고 죽이는 관계 속으로 몰아넣는 전쟁의 소모품일 따름이다.

레오네 감독에게 있어 남북전쟁은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처럼 인권해방을 목표로 한 숭고한 가치의 역사가 아니었다. 산업국가가 발전해나가는 과정에서 원료산지와 노동력을 확보하고 방해물을 제거해나가는 역사법칙의 필연적 과정이자 현재진행형의 사건에 지나지 않았다.

<석양에 돌아오다>의 역시 최고의 장면은 막판의 묘지에서 벌어지는 ‘좋은 놈’, ‘나쁜 놈’, ‘추한 놈’의 삼각결투 신이다. 그 남북전쟁의 전사자들이 잔뜩 묻혀있는 묘지의 묘비명으로 사용된 돌에는 아무 것도 적혀있지 않다. 그토록 갈망해마지 않던 막대한 금화는 누구누구 옆의 ‘무명(Unknown)’이라 쓰인 무덤가에 고이 매장되어있다.

금화가 파묻힌 장소가 대규모 묘지라는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대량학살이 벌어지는 전쟁이었다. 8개의 묵직한 금화주머니로 표상되는 미국의 부와 번영은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전쟁과 그 비극에 내던져졌다. ‘좋은 놈’, ‘나쁜 놈’, ‘추한 놈’도 결국 그 욕망의 가련한 희생자들이다.

미국자본주의의 만들어낸 ‘부’가 일일이 이름을 거론할 수 없는 무명의 희생자들의 피로 이룩된 것이란 바람에 실려 온 조롱이 황량한 죽음을 건 결투의 장에 무겁게 가라앉는다. 마치 무언의 협박처럼. ‘계급’의 구도는 여기서도 다시금 확인된다. 삽을 던져주며 땅을 팔 것을 ‘추한 놈’ ‘투코’를 종용하는 ‘좋은 놈’ ‘블론디’는 나지막이 이 영화 최고의 명대사를 읊는다. 의심할 여지없는 이스트우드 특유의 빈정대는 듯한 무표정으로.

“세상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네, 친구...
‘장전된 총을 가진 자’와 ‘땅을 파는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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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스런 리뷰 감사합니다.
영화 리뷰는 aaa 사이트에서 적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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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는 그것을 시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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